‘천장의 세계’는 오르가즘 아닌 후유증
성매매 여성들의 외상피해 밝혀
<여성주의 저널 일다> 최홍현정
한국사회에 ‘외상’(신체적 안녕감에 위협을 주는 사건을 경험했거나 목격한 것으로, 이에 대해 극심한 공포와 무력감을 느꼈을 경우)과 관련된 심리적 후유증이 알려진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충격적인 일을 겪었더라도 그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은 ‘개인이 온전치 못하기 때문’이라고 여겨지기 일쑤였다. 외상으로 인한 개인의 변화가 외상을 경험했다는 사실과 연결되지 못한 채 피해자에 대한 비난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성매매 여성을 격리시킨 가혹한 시선들

성매매 여성의 경험이 ‘외상’이라고 인정되기란 더더욱 어려웠다. 성매매에 대한 뿌리 깊은 오해와 편견은 여성들을 일상적 사회로부터 격리시켰으며, 따라서 이들의 경험은 가혹한 시선으로만 읽혀질 뿐이었다. 매일 잠재적인 폭력 속에서 살아야 하며, 친밀감이 삭제된 성을 당연시해야 한다는 것, 자신의 삶을 통제할 의지가 자신의 손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을 ‘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위험한 생각은 사회적으로 아무렇지 않게 이어져왔다. 자신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면서도 ‘성매매 여성’이라면 그럴 것이라는 어긋난 생각, 그로 인해 성매매 여성의 인권은 망각될 때가 너무 많았다.

왜 다른 모든 이들에게는 ‘외상’일 법한 경험이 성매매 여성에게는 ‘일상’이 되겠는가. 물론 상담을 하던 중에 한 분은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이런 일(신체적 폭력)은 늘상 있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한테는 큰일도 아니야”라고. 하지만 그 삶의 경험을 내가 한다고 생각해본다면 결론짓기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아무리 늘 있는 폭력이라도 그것을 절대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일 수는 없다. 다만 그 안에서 어떻게라도 살아남아야 하기 때문에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방편을 취하게 마련이다. 그 상황에선 ‘큰 일이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이 되었을 것이다.

작년 서울여성영화제에서 성매매 합법화를 주장했던 한 다큐멘터리가 상영됐다. 인터뷰에 등장했던 한 인물(성매매 경험이 없던)은 여성들이 일을 하는 도중 “천장의 세계로 빠져드는 경험을 한다.”고 말하면서 성매매를 마치 에로틱한 경험인 것처럼 표현했다. 그러나 매일 수많은 ‘얼굴 없는 몸뚱아리’(한 내담자의 꿈속에 매번 나타난 성 구매자의 상징)들과의 성적 경험이 자신에게 ‘에로틱’하지 않을 것 같다고 여겨진다면, 우리는 성매매 여성들에게 있어서도 그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읽어보아야 한다. 얼굴 없는 몸뚱아리와의 성경험이 섹스에 가까운가, 공포에 가까운가. 실제로 ‘천장의 세계로 빠져드는 경험’은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나타나는 해리경험에 가까우며, 이것은 외상 후유증이지 오르가즘이 아니다.

“바싹 말라 뜯겨져 버리는”

심리평가 도구를 통해(관련 기사 참조) 성매매의 경험이 여성들의 자아에 얼마만큼의 상처를 주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들은 자신의 신체와 자아를 깊이 손상된 것으로 여기고 있었으며, 이는 자신의 경험과 연결됐다. 또 대체로 ‘성폭력’ 피해자들이 보이는 검사결과와 유사한 양상을 띠었다. 한 여성에게 있어서는 “자신을 뜯어먹으러 달려드는 벌레들과의 경험”으로 투영됐는데, 그만큼이나 끔찍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검사결과는 성매매 경험으로 인하여 친밀감이라는 정서가 “바싹 말라 뜯겨져 버리는” 무엇으로 남겨졌다고 암시하고 있다. 그것은 탈성매매 이후 몇 년이 지나도 지속됐으며, 심리적 어려움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성매매가 단순히 ‘행동’이 아닌 성적착취 ‘체계’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성매매 속의 ‘성’은 수많은 외상경험의 일부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성매매 구조 속에서 여성들은 지속적으로 신체적 성적 심리적 폭력을 경험한다. 허먼(Judith Leiws Herman)이라는 학자의 정리를 빌려오면 성매매 여성의 외상경험이 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1997년 <외상과 회복>(Trauma and Recovery)이라는 책에서 그는 전쟁포로, 나치 수용소, 폭력가정, 조직적 성적착취 집단의 생존자가 경험한 만성적인 폭력적 환경을 설명했다.

허먼은 이를 감금(captivity)이라고 이름 붙였고, 신체적 물리적 감금뿐 아니라 심리적 감금의 경험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했다. 감금의 생존자들은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폭력을 경험하였고, 자신 또는 지인의 상해에 대한 협박과 위협을 받았고, 수면박탈, 성적위협, 신체관리, 질병방치 등 신체적 자율감을 박탈 당했다. 또한 가해체계는 피해자의 애착관계를 훼손함으로써 타인과의 연결성에 대한 내적 심상을 파괴함과 동시에, 음식이나 중독성 물질의 제공 등 간헐적 보상을 통해 피해자에게 심리적 혼란을 일으키고, 가해자에 대한 의존을 강화시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 결과 피해자는 심각한 공포와 두려움, 무기력감, 수치심을 경험하게 되고, 이러한 경험들이 이후 만성적인 외상성 스트레스로 드러난다고 보았다. 필자의 연구에서 성매매 여성들은 일반 이상의 신체적 자율감 훼손과 애착관계의 파괴, 경제적 어려움, 예측할 수 없는 물리적 폭력, 그리고 낙인경험을 지녔으며, 이와 관련된 후유증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폭력의 누진으로 나타나는 ‘심리적 통증’

외상 후 스트레스는 사건과 관련된 재경험 증상들, 이를테면 반복적인 회상이나 꿈, 사건을 실제 다시 경험하는 것 같은 감각적 경험들을 포함한다. 또한 외상과 관련된 내적인 혹은 외부적인 단서를 회피하는 반응, 과도한 각성상태나 경계, 놀람 반응이 명시되어 있다. 이외에도 외상 후유증과 관련된 심리적 어려움들이 존재하는데,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와 다른 장애가 ‘공존’해 있다고 보기도 하지만 일부 학자들은 아동기 학대를 경험하거나, 반복적인 외상경험을 한 이들의 후유증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보다 넓은 의미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보고 있다.

이 때는 앞서의 증상뿐 아니라, 정서조절의 어려움, 정서를 조절하기 위해 자해나 섭식문제를 보이는 경우, 외상과 관련된 기억상실이나 이인증, 비현실감과 같은 해리, 신체적 이상이 없는데도 신체적 고통을 호소하는 신체화, 또한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지각, 대인관계 갈등이나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정체성의 혼란과 가해자 의존문제, 이 밖에도 미래에 대한 부정적 기대와 관련된 무망감, 세상을 과도하게 위협적으로 지각하는 것 등이 나타날 수 있다고 본다. 성매매 여성의 호소에서도 반복적으로 드러나는 내용들이다. 이에 더하여 심각한 피해망상이나 환청, 환시와 같은 정신증적 증상을 보이기도 했다.

허먼의 감금(captivity) 경험은 성매매 여성의 경험을 정확히 나타내고 있다. 일부 성매매 여성은 아동기 때도 높은 성적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경험하기도 했다. 필자의 연구에서 성매매 여성은 성매매 경험이 없는 여성에 비해 훨씬 높은 수준으로 신체적 성적 학대를 경험했으며, 그 중 아동기 성학대를 경험한 여성은 대부분 중요한 타인에 의한 학대와 모르는 타인에 의한 학대를 중복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폭력환경에 대한 대안이 없는 경우, 성인기에도 성매매와 같은 만성적인 폭력환경에 놓이게 될 수 있다.

또한 반복적으로 이러한 경험이 누적된 여성의 경우, 위와 같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을 수 있다. 실제로 성매매 경험이 있는 수많은 여성들이 이러한 고통에 방치돼 있다. 외국의 사례를 보면 성 산업이 개인에게 가하는 구속력이 피해자의 자율성을 파괴하고, 그 결과 피해자에게 해리상태나 물질 남용, 자해행동, 자살시도와 같은 자기 조절의 문제, 정체성과 대인관계의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외상 후유증 전문적 치료 지원돼야

여러 활동을 통해 성매매 여성에 대한 지원은 향상되고 있지만, 외상과 관련된 심리적 후유증과 관련해서는 연구는 물론 지원체계나 프로그램 개발 역시 미흡하다. 정신건강 분야에서 생산적인 관심을 쏟지 않는 이유도 있고, 외상 후유증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지원의 시급성을 과소평가하는 일부 지원영역의 실수에서도 비롯된다.

성매매 여성은 정신건강 전문기관을 찾는다 해도 ‘낙인’ 위협 때문에 쉽사리 경험을 이야기하지 못한다. 상담을 담당하는 활동가에게도 심리적 변화와 혼란을 털어놓기 어렵다. 외상경험이 고려되지 않은 진단과 치료는 어긋나기 십상이다. 이 경우, 법률지원이나 직업재활과 같은 다른 지원체계의 장점이 축소될 가능성도 우려된다.

외상 후유증은 심각하게는 뇌기능 이상 및 만성적인 성격적 변화를 가져오는 위험한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전문적 지원을 통해 해결할 수 있으며 해결해 나가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성매매 여성들이 경험하는 외상의 심각성이 밝혀진 점은 다행스럽지만, 이제는 그만큼 지원의 뒷받침이 행해져야 할 것이다. 성매매 여성 스스로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강조한다 해도 막상 여성들의 외상 후유증을 축소한다면, 그 진정한 증언을 막혀질 수밖에 없는 셈이다.

외상 생존자들이 겪는 고통은 자신의 신체와 감정, 대인관계를 통제할 수 없다는 극심한 위협감에서 시작된다. 성매매 여성의 만성적 외상 경험을 간과하는 것은, 복귀를 위한 필수적인 단계를 건너뛰는 것과 같다. 그 단계는 자신과 자신을 둘러싼 환경을 스스로 조절할 수 있는 통제감을 획득하는 것인데, 이것이 보장되어야만 자기보호의 점진적 발달에서 우러나온 ‘목소리’가 전해질 수 있다. 따라서 전문적인 심리평가를 통해 자신의 증상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효과가 증명된 심리적 정신과적 치료를 통해 점차 그 힘을 회복해가는 단계가 반드시 제공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