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매매 여성들의 해리경험
피해의 악순환은 ‘마음의 고통’ 때문
<여성주의 저널 일다> 최홍현정
성매매 여성들이 겪는 외상성 스트레스를 분석하고 이를 발생시키고 유지시키는 요인에 대해 밝히기 위해, 2005년 8월부터 11월까지 서울, 경기도, 인천, 대구, 광주, 전주의 성매매 피해 여성지원기관 내담자들의 참여를 통해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성매매 여성들의 ‘해리’경험과 외상 후유증에 대한 유효한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해리’는 둘 이상의 정신적 과정, 혹은 내용이 통합되거나 연합되지 않고 분리된 심리적 현상이라고 정의된다. 지각, 행동, 정서, 사고에서 분리되는 느낌을 주는 ‘이인증’, 자신의 주변이 진짜처럼 보이지 않고 비현실적으로 지각되는 ‘비현실감’, 특정한 과제에 지나치게 관여해 시간관념이 없어지거나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알아채지 못하는 ‘몰입’ 그리고 ‘기억상실’ 등이다.

이인증과 비현실감의 예로 실제 일어나는 일이 마치 꿈속처럼 여겨진다거나, 자신이 무언가를 하고 있는 모습을 관찰자처럼 바라보고 있는 경험, 신체가 자신의 것이 아닌 것 같은 경험, 세상이 안개 속을 통해 보이는 것처럼 낯선 경험 등을 들 수 있다. 이러한 해리경험은 외상 사건에 대한 반응으로 볼 수 있으며, 다양한 형태의 ‘외상’(신체적 안녕감에 위협을 주는 사건을 경험했거나 목격한 것으로, 이에 대해 극심한 공포와 무력감을 느꼈을 경우) 관련 장애와 연관된다.

탈출 불가능한 상황에서 ‘심리적 도망가기’

일찍이 1907년 자넷(Janet)은 ‘심인성 해리’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는 해리를 “과도한 외상을 경험한 개인의 외상에 대한 대처반응”이라고 보았고, 해리가 외상경험의 적응과 관련된 주요 요인이라 했다. 일반적으로 해리는 성 학대를 경험한 아동이 보이는 방어기제로 설명되며, 심리적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기 위해 스스로의 주의, 감정, 사고, 행동, 기억의 일상적인 연결을 손상시키거나 회피하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해리경험은, 실제적인 탈출이 불가능한 심각한 위협 상황에서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생존방법으로서의 심리적 탈출이다. 학자들은 ‘싸우거나 도망치기’ 방법이 불가능할 경우 인지적 정서적으로 도망가기를 시도하는 것이 해리경험의 핵심이라고 설명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피해자는 고통스러운 정서와 기억으로부터 거리를 둔다. 실제로 해리경험은 신체적 성적 학대와 관련이 있으며, 특히 아동기의 반복된 학대와 높게 연관된다.

외국연구뿐 아니라 국내 경우도 성매매 여성의 인터뷰 속에서 해리경험이 자주 등장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가 실시한 연구에서도 성매매 여성의 해리경험은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는데, 특히 아동기에 중요한 타인에 의한 성학대 경험이 누적된 경우 보다 심각했다. 신체적 자율성이나 애착의 파괴, 반복된 폭력, 낙인 경험과 같은 감금(captivity) 경험이 높을수록 해리경험 수준이 상승했고, 성매매 일 도중에 심리적 회피수단으로 해리를 나타냈을 경우 일상에서도 해리경험이 만성화되는 것으로 밝혀졌다.

해리경험은 그 자체로도 매우 고통스럽지만, 이것이 심리적 후유증을 만성화하고 외상 환경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기능을 담당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해리경험은 외상 후유증을 발생시키고 또한 유지한다. 외상경험이 우리 인지에 통합되려 할 때, 이를 방해하는 심리적 과정으로 인해 계속 증상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우리는 일상적인 사건들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쉽게 기억에서 지우기도 한다. 외상 사건도 이러한 절차를 거쳐 ‘하나의 과거’로 처리되어야 하지만, 사건의 과도한 속성으로 인해 부정적인 방식으로 이에 대처하게 되고, 이 때문에 결국 처리가 지연되는 것이다.

해리도 이와 비슷한 기능을 담당하는데, 해리경험은 일종의 회피이며 그 결과 외상 스트레스를 유지시키는 기능을 한다. 성매매 여성은 탈성매매 이후에도 성관계 상황이나 강한 정서적 상황에 직면하였을 때 이를 마치 ‘외상’인 것처럼 경험하고, 해리와 같은 부적절한 방식으로 대처하게 된다. 마치 도망가야 할 상황인 것처럼 말이다. 안전하고 친밀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개인은 끊임없이 그것을 위험상황으로 지각하고 외상을 재경험하는 반응을 나타낸다. 자신을 둘러싼 세상이 언제나 심리적으로 위협적일 뿐인 것만큼 힘겨운 일은 없을 것이다.

후유증 돌보지 않으면 피해 반복돼

해리경험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유지하는 것뿐 아니라, 대인 관계적 직업적 기능장애를 포함하여, 만성적으로 무력하고 수동적인 사회적 위치에 처할 우려를 발생시킨다. 또한, 다른 문제해결 방식에 대한 탐색을 방해하며, 정체성 문제, 대인관계 갈등, 정서조절에서의 어려움과 같은 성격적 어려움으로 굳어질 수 있다.

‘정체성’의 혼돈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주장을 비판 없이 따르게 되는 피암시성을 높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체성 문제는 아동기 학대경험의 결과물이라고 알려져 있으나, 본 연구에서는 그와 상관없이 성매매 경험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성매매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해리’로 대처했을 경우, 현재 정체성의 혼돈과 피암시성이 높아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자신이 어떠한 사람인지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외상에 의해 손상될 수 있다. 사례에서 지속적으로 해리를 경험한 한 여성은, 자신의 욕구와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대인관계 상에서 착취를 경험하기도 했다.

또한 정서를 표현하고 다스릴 줄 아는 ‘정서조절’ 능력이 부족하면 충동적이고 반복적인 자기파괴적 행동과 자살시도 등으로 대응할 수 있다. 특히 해리와 같이 자신이 ‘죽어있는 느낌’을 해결하기 위해 자해처럼 긴장을 감소하려는 행동을 하게 되며, 그로 인해 ‘살아있는 느낌’을 회복하게 된다.

‘긴장감소’ 행동은 아동기 학대의 충격적 정서에 대한 보상이라는 견해도 있다. 아동이 자신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에 비해 과도하게 심각한 외상을 경험하게 되면, 정서를 조절할 대처 능력을 발달시키지 못하고 위험하거나 미성숙한 방식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 오랜 동안 심각한 아동기 학대를 경험했던 한 성매매 여성은, 자신의 고통스러운 감정을 극복하기 위해 위험한 성행동에 빠지게 된다고 했다. 이 경우 위험한 성행동은 ‘즐기는 것’이 아니라, ‘빠지게 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즉, 일련의 긴장감소 행동들은 외상의 결과물이다.

이처럼 성매매 여성의 경험하는 반복된 외상경험은 심각한 심리적 후유증을 낳고, 이러한 후유증은 다시 외상을 반복하게 하는 위험요인이 된다. 후유증을 돌보지 않으면 외상경험 자체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재피해의 관점에서, 외상사건을 경험한 사람들은 그 심리적 결과물로 인해 이후에 또 피해를 겪는 상황에서 더욱 취약해진다.

후유증의 만성화를 ‘선택’으로 봐선 안돼

생존자들은 후유증으로 인해 위험한 상황에서 사회적 단서를 무시하거나 축소화하는 경향이 있고, 잠재적인 해로움을 인식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또 후유증이 만성화되면 성매매 경험에서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거나, 앞으로 변화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여성들은 자신의 후유증을 외상과 관련시키지 못하고, ‘미쳐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경험하고 있었다. 평생 “그런 사람”으로 살아야 하는 것에 대한 자존감의 손상에서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연속선상에서, 탈성매매의 어려움은 재피해 혹은 후유증의 만성화로 바라봐야 하지, ‘선택’이나 ‘자발성’과 같은 무모한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원을 통해 서서히 재외상화의 고리를 끊어가는 긴 과정이 필요하다. 성매매 여성의 삶에 겹겹이 쌓인 어려움은 여성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와 타인에 의해 저질러진 폭력의 문제이며, 그 이후에 개인의 심리적 반응이 얽힌 결과물이다.

따라서 성매매 여성이 다시 삶의 통제감을 획득할 수 있기 위해서는 사회적인 인식의 변화와 전문적인 노력이 필수적이다. 외상 후유증은 개선될 수 있는 병이다. 과거의 경험이 전혀 없었던 것으로 될 수는 없을지라도, 과거의 고통에 적절히 대처하고 새로운 방식의 힘을 다시 회복할 수 있는 기회란 피해자의 당연한 권리다. 성매매 여성은 그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