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는 '미성년자 성매매' 판결문 219개를 분석했다. 또 피해 여성 5명을 인터뷰했다. 아홉 차례에 걸쳐 그 실태를 해부한다. 이 기사는 그 여섯번 째다. [편집자말]
 채팅앱 쪽지 랜덤채팅앱에서 실시간으로 쪽지가 왔다. '아동청소년 성매매는 범죄입니다'라는 공지가 떴지만 쪽지는 끊이지 않았다.
 채팅앱 쪽지 랜덤채팅앱에서 실시간으로 쪽지가 왔다. "아동청소년 성매매는 범죄입니다"라는 공지가 떴지만 쪽지는 끊이지 않았다.
ⓒ 신나리

관련사진보기

   
하이 혹시 조건 가능하세요?

딱 1분 만이었다. 지난 12월 9일 랜덤 채팅앱(무작위 대화앱) 중 대표적으로 알려진 A 앱에 가입하자마자 쪽지가 쏟아졌다. 10여 개의 쪽지를 받는데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B, C 등 다른 앱도 가입하자마자 메시지가 쏟아졌다. 내용은 비슷했다. 상대는 '조건만남'을 제안했다.
 
용돈 만남하세요? 3시간 40선불드립니다!
용돈 만남 가능하세요?
만남 생각하시면 연락주세요
안녕하세요 어떤 만남 구하시나요?
하이 반가워요. 혹시 관계없이 키스, 스킨십만. 볼 때마다 15만 이상, 관심 조금이라도 있어요?

상대는 기자가 '실제 나이가 (앱에 설정한) 20살이 아니라 18살' 이라거나 '16살'이라 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존댓말로 만남을 제안하다 나이가 어린다는 걸 알고 반말로 바꿨을 뿐이다. 사진을 보내달라고 요구하거나 키·몸무게, 성관계 유무를 캐묻기도 했다. 미성년자임을 밝힌 후 조건만남 요구에 몇 차례 답하지 않자 상대는 조건의 값을 올리기 시작했다. 시간당 15만원이었던 제안은 금세 40만원이 됐다.

기자가 지난 12월 9일부터 17일까지 20여 명의 사람과 대화를 나눈 결과다. 지난 4월, 만 16세 미만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가질 경우 강간죄에 준해 처벌하기로 형법이 개정됐지만, 랜덤채팅 앱에서 대화한 사람 중 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익명의 함정

랜덤채팅 앱은 철저히 익명으로 운영된다. 신원확인절차 없이 닉네임, 성별, 나이를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 서로의 나이와 신분을 속일 수 있는 환경인 셈이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유롭게 이야기하자는 취지의 익명성은 범죄 환경을 부추기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지난 8월 채팅앱에서 '강간 상황극 유도글'을 보고 여성을 성폭행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당시 '성폭행 상황극을 하고 싶다'고 글을 올린 남성은 채팅앱에서 여성으로 활동했다. 텔레그램 '박사방' 운영자 조주빈 역시 랜덤채팅으로 피해자를 물색했고, 전북 전주와 부산에서 실종된 여성 2명을 살해한 최신종은 랜덤채팅에서 만난 여성을 살해했다.

사실 랜덤채팅의 세계는 아동·청소년 성착취가 쉽게 벌어지는 공간으로 여러 차례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2015년, 랜덤채팅에서 만난 포주에 의해 성착취를 당하던 14세 미성년자가 봉천동 모텔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시민단체와 여성계를 중심으로 랜덤채팅 앱에 대한 강력한 규제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시 일부 앱은 본인 인증 기능과 신고 기능을 추가했지만 그뿐, 규제나 제도 변화는 매우 더디다.

그 사이 랜덤채팅 앱은 청소년의 성매매가 벌어지는 창구가 됐다. 여성가족부(아래 여가부)가 지난 6월 15일 발표한 '2019 성매매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이 조건만남을 하는 주요 경로는 채팅 앱(46.2%), 랜덤채팅 앱(33.3%), 채팅 사이트(7.7%) 순이다.

왜 하필 랜덤채팅 앱이었을까? 앱은 무엇보다 접근이 쉽다. 가입 조건이 쉽기도 하고 실제 만남으로 이어지는 물리적 접근도 쉽게 이루어진다. 앱 내의 GPS시스템을 통해 채팅 이용자 간의 거리가 km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서로 어느 지역인지, 지역 내 위치가 어디인지 가늠할 수 있어 만남이 용이하다.

범죄는 용이하게, 신고는 힘들게
 
채팅앱, 신고는 어려워 랜덤채팅 앱에서는 포인트를 유료결제해야 상대방에게 쪽지를 보낼 수 있다.(좌) 앱 내에서 디지털성폭력 증거를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쪽지가 자동 삭제되거나, 상대방이 쪽지를 삭제하면 대화 내용 자체가 없어져 증거가 사라진다.(우)
▲ 채팅앱, 신고는 어려워 랜덤채팅 앱에서는 포인트를 유료결제해야 상대방에게 쪽지를 보낼 수 있다.(좌) 앱 내에서 디지털성폭력 증거를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쪽지가 자동 삭제되거나, 상대방이 쪽지를 삭제하면 대화 내용 자체가 없어져 증거가 사라진다.(우)
ⓒ 신나리

관련사진보기


랜덤채팅 앱 내의 결제방식이 암묵적으로 '조건만남'을 조장하기도 한다. 대부분 앱에서 이성에게 말을 걸려면 '돈'이 필요하다. 대화하거나 쪽지를 먼저 보내려면, 포인트를 사용해야 한다. 포인트는 앱 내에서 유료 결제를 통해 살 수 있다. 기자에게 먼저 쪽지를 보낸 남성 역시 포인트를 구매해 쪽지를 보냈다. 받은 쪽지에 답장하는 건 별도 결제가 필요하지 않다. 랜덤채팅앱 사업자는 포인트를 판매하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논문 '디지털 기반으로 한 성착취 가해자 양상에 관한 연구'(석희진·2019)는 랜덤채팅 앱의 결제방식을 '성착취 가해자들의 투자비용'이라고 정의했다. 석희진 탁틴내일 활동가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채팅앱 회사는 앱 프로그램을 건전한 만남과 재미있는 경험으로 포장하지만, 실제로는 성착취 구조를 만들어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린다"라고 지적했다.

랜덤채팅 앱을 통해 조건만남을 할 수 있는 환경은 쉽게 조성되지만, 앱 내의 디지털성폭력을 신고하기는 쉽지 않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쪽지가 자동 삭제되거나, 상대방이 쪽지를 삭제하면 대화 내용 자체가 없어져 증거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상대가 탈퇴할 경우 대화를 복구하기도 어렵다. 랜덤채팅 앱 관리자는 수시로 '불법촬영물 유포 등 디지털성폭력, 음란물 유통, 성매매 행위·알선·권유·강요,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는 법률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공지사항을 남겼다. 하지만 실제로 피해가 벌어졌을 때 신고조건을 갖추기 어려운 환경이 방치돼 있다.

이를 두고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랜덤채팅 앱은 앱에서 발생하는 성범죄는 신고하기 어렵게 만들어놓고 아무렇지 않게 장사를 이어가는 사이버 포주"라고 꼬집었다. 여가부는 대다수의 랜덤채팅 앱이 '청소년유해매체물'에 해당한다고 발표했다. 여가부가 지난 11월 30일 기준으로 점검한 랜덤채팅 앱 534개 중 청소년유해매체물에 해당하는 앱은 469개(87.8%)다. 국내 사업자의 408개 앱 중 347개(85.0%), 해외 사업자의 126개 앱 중 122개(96.8%)가 청소년유해매체물이었다.

지난달부터 공식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국 랜덤채팅 앱이 공식적으로 제재를 받게 된 건 지난 12월 11일부터다. 여가부는 랜덤채팅 앱에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고시'를 시행했다. ▲실명 인증 또는 휴대전화 인증을 통한 회원관리 ▲대화 저장 ▲신고 기능 등이 없는 앱은 청소년 유해매체물로 지정돼 청소년에게 서비스할 수 없게 됐다. 여가부 고시가 시행되기 전 기자가 가입했던 한 랜덤 채팅앱은 11일 이후 추가 본인인증을 해야 대화가 가능하게 했다. 본인인증은 휴대전화 인증과 실명인증 중에서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그렇다면 청소년 유해매체물 결정고시는 앱을 통한 성매매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수 있을까? 전문가들은 여가부의 고시를 '최소한의 조치'라고 봤다. 이미 랜덤채팅 앱 외에 트위터, 인스타그램, 유튜브,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게임 내 채팅 등 인증이 필요 없는 곳으로 성매매 플랫폼이 이동했다는 주장이다.

"여가부의 고시로 채팅앱을 이용하는 성구매자가 일부 줄어들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조치일 뿐이다. 텔레그램이나 랜덤채팅앱이 주목받자 성구매자인 가해자들은 이미 플랫폼을 이동했다. 카카오톡 등 메신저 앱을 비롯해 미성년자가 많이 하는 게임에서 대화를 하며 성매매를 유도하는 식이다."

조진경 십대여성인권센터 대표는 "플랫폼 차단을 뛰어넘어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경찰청 등과 연계해 가해자를 고발하거나 '디지털 성범죄 대응센터' 구축 등 중·장기 계획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십대 성매매를 담당하는 여성·청소년계(아래 여·청계) 형사들도 성매매 플랫폼 이동 속도가 제재보다 한발 앞선다고 꼬집었다.

빠르게 이동하는 성매매 플랫폼... 대안은 무엇인가

서울의 한 5년 차 여·청계 형사는 "디지털성범죄 신고가 들어와 플랫폼과 관련해 수사하면, 이미 그 플랫폼은 시스템을 바꾸며 진화했다"라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음란물을 유통한 소라넷 운영자들이 1999년 9월부터 2016년 4월까지 17년간 해외에 서버를 두고 사이트를 운영했다"라며 "경찰의 수사가 힘을 얻으려면 이런 사이트를 적극적이고 공격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랜덤채팅 앱 등 플랫폼에 보다 적극적인 책임을 묻는 대표적인 제도가 미국의 '온라인 성착취 대응 및 처벌법(FOSTA-SESTA)'다. 2018년 제정된 이 법은 성매매 콘텐츠를 올린 사이트에 민·형사상 책임을 묻는 것을 골자로 한다. 성매매 알선 광고와 같은 성매매 연관 콘텐츠를 게재한 소셜미디어, 포털, 인터넷 사이트를 주검찰이 기소하거나 성매매 피해자가 직접 소송을 걸 수 있다. 성매매·음란물 관련 콘텐츠 유통에 책임을 지지 않았던 구글·페이스북 같은 인터넷 업체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된 것이다.

미국에서 이 법이 제정된 해(2018년), 국내 여성단체들은 플랫폼 사이트 처벌을 주장했다. 여성성매매해결을 위한 전국연대와 다시함께상담센터 등은 성매매를 방조한 몇몇 사이트를 언급하며 "적극적이고 노골적으로 성매매 광고를 게시한 사이트 운영자를 방조범으로 봐선 안 된다"라고 강조했다. 석희진 탁틴내일 활동가 역시 "미국의 FOSTA처럼 국내에서도 플랫폼 운영자에 대한 처벌 및 책임 부과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오마이뉴스: 신나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