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리지 않는 어른들, 못말리는 아이들

[위험수위의 청소년 범죄④] 청소년 탈선 외면하는 어른들

[ 2009-04-17 06:00:00 ]

CBS노컷뉴스 박슬기 기자박슬기

경기도 과천 서울대공원 소동물관 앞 벤치에서 10대 청소년 5명이 담배를 피우고 있다. '금연공원'으로 지정돼 공원 내
편의점에서도 담배를 팔지 않았지만 이들은 바닥에 침을 뱉어가며 미리 준비해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을 말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이들 옆 벤치에 앉아 있던 20대 청년은 "덩치 큰 아이들에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고 뭐라고 했다가 내가 무슨 일 당할지 모른다"며 외면했다.

이어 "뉴스에서 10대 청소년들을 나무랐다가 폭행당한 어른들 모습도 많이 나오고…"라며
자리를 옮겼다.

일선 교사들도 아이들 지도에 큰 부담을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부임한지 얼마 되지 않은 젊은 여교사들 사이에서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올해로 교직생활 2년째에 접어든 김 모(25·여) 교사는 지난해에 겪은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김 교사는 경기도 A고교에 부임한지 석달이 지난 지난해 6월쯤 수업중 휴대전화로 문자를 보내며 딴짓을 하던 B(16)양을 나무랐다.

하지만 B양은 김 교사에게 심하게 대들었고 급기야 욕을 하며 책상을 발로 밀쳐내더니 교실 뒷문을 박차고 나가 버렸다. 당시 너무 놀란 김 교사는 결국 인근 병원에 들러 안정제를 투약하는 응급처치를 받아야 했다.

김 교사는 "그 일이 있은 뒤 잘못을 저지르는 학생을 보고도 겁이 나 몸을 사리게 된다"면서 "어른으로서, 교사로서 말려야 하지만 그들이 꺼려지는 건 사실"이라고 고충을 토로했다.

회사원 이 모(47)씨는 2년전 고등학생 아들과 함께 집을 나서다 교복을 입은 남녀 고등학생 대여섯명이 골목길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봤다.

옆에 아들이 보고 있고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이들에게 "담배를 피우지 말라"고 타일렀지만 돌아온 반응은 황당했다.

이 씨의 훈계를 들은 체도 않던 이들은 "아저씨, 그냥 가세요. 아저씨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라고 큰 소리를 치며 이 씨를 때릴듯이 위협했다.

결국 화를 참지 못한 이 씨는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했고 이 일로 경찰에 폭행혐의로 입건됐다. 이 씨는 "요즘은 정말 어른 노릇하기가 힘들다"며 "형사처벌을 받고 나니 다시 또 그런 일이 발생해도 나설 수 없을 것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어른들이 청소년들의 잘못을 보고도 지적하거나 훈계하지 못하는 시대가 됐다. 아이들은 어른들의 지적을 '쓸데없는 간섭'으로 치부하기 일쑤이고, 아이들의 막나가는 모습에 어른 역시 처음에는 흥분한다. 그러다 이런 일이 반복되면 '그냥 피하자'며 아이들을 기피하게 된다. '못말리는' 아이들에 '말리지 않는' 어른들의 시대가 된 것.

하지만 어른들의 회피와 무관심은 청소년들의 탈선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최근 경기도 성남에서 발생한 지적장애 소녀 살해사건이나 10대 알몸폭행 동영상 사건 등 도를 넘는 청소년들의 범죄는 어른들의 무관심이 부른 문제였다.

청소년 전문가들은 아이들을 훈계할 때 무조건 훈계하기 보다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방식으로 접근할 것을 조언한다.

한국아동코칭센터 인보영
이사는 "요즘 아이들이 반항하는 것은 어른을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어리다는 이유로 어른들의 지시를 무조건 따르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고 지적했다.

이어 인 이사는 "탈선 청소년들에게 다가갈 때는 훈계나 안좋은 눈으로 바라보는 것 보다 걱정된다, 관심이 있다는 마음을 전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대전 중부경찰서 여성청소년계 관계자는 "범죄 청소년들을 조사하다 보면 부모와의 대화나 스킨십이 부족한 친구들이 많다"면서 "학교, 정부, 사회 모두가 청소년을 위해 고민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가정에서 자녀에게 '너를 사랑하고 있다'는 확신을 줘야 한다"고 충고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어른들이 아이들의 관심사를 알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이것이 충족되지 않은 채 계속 훈계를 듣다보면 이를 벗어나고 싶어 가출을 하게 되고 범죄현장에 노출되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상섭 국립법무병원장은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은 부모나 친구 등 주변 사람들이 자신에게 무관심하다고 느끼게 되면 모든 일에
자신감이 없어지고 우울해 하며, 성질이 다혈질로 되며 매사에 불안해지기 쉬워 규칙과 법을 어기는 인격으로 자라게 된다"면서 "국가적으로 적극적인 관심과 지속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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