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청소년 동거'

[위험수위에 이른 청소년 범죄⑤] 청소년 동거 확산문제

[ 2009-04-17 06:00:00 ]

CBS노컷뉴스 박슬기 기자박슬기

##취직을 위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혜진(17·여·가명)이는 최근 겪은 일 때문에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을 마치고 휴대전화
공장에 취직이 돼 학교에 취업계를 내고 올라온 혜진이는 함께 자취하기로 한 친구가 갑자기 일이 생겨 올라오지 못하게 되면서 거처를 정하는데 차질이 생겼다.

혼자 자취할만한 저렴한 방이 있나 인터넷을 뒤적거리던 중 '동거녀를 구합니다'라는 글을 보고 눈이 번쩍 뜨였다. '
아파트 월세와 관리비 등 모든 비용은 제가 지불하니 몸만 와서 생활하면 된다'는 문구까지 써져 있었다.

당장 이메일을 보냈고 답이 왔다. 마침 집이 공장에서도 멀지 않은 곳이어서 좋았다. 상대는 올해 전문대학에 입학한 대학생이었는데 집이 지방이라 혼자 자취하고 있다고 했다.

빨래와 요리 등 간단한 집안일만 해주면 돈 안받고 먹여주고 재워주겠다기에 의심없이 상대남의 집으로 들어 갔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그것이 '악마의 유혹'임을 알 수 있었다.

상대남은 매일 밤 동침을 요구했고 어느 날은 자신의 친구들을 데려와 그들과도 강제로 성관계를 맺을 것을 요구했다. 싫다고 거부하면 혜진이에게 폭행을 하기도 했다.

참지 못해 혜진이가 집을 나가겠다고 했더니 상대남은 그동안의 숙식비를 지불하라고 협박했다. 혜진이는 상대남이 외출한 사이 간신히 집을 나올 수 있었고 지금은 회사 동료 집에 얹혀 살고 있다. 이후 상대남으로부터 이메일과 문자가 끊이지 않는 통에 혜진이는 요즘 뜬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이다.

혜진이는 "동거를 쉽게 생각했던 내가 바보였다"고 뒤늦은 후회를 했다.

##올해 대학교에 입학한 미숙(18·가명)이는 개강한 지 한달이 지나서야 첫 등교를 할 수 있었다.
 
올 초 동거하던 남자 친구에게 심하게 구타를 당해 얼굴이고 몸이고 피멍이 들어 도저히 학교에 갈 수 없었다. 미숙이는 서울 집을 떠나 올초부터 대학 인근 주택에서 자취를 시작했고, 그즈음 아르바이트를 하며 사귀게 된 남자 친구와 동거를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는 이유로 미숙이는 남자친구로부터 심하게 구타 당했다.
머리, 어깨, 손, 발 할 것 없이 마구 구타를 했고, 성폭행까지 시도했다. 너무 놀란 미숙이는 강력히 반항하다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 인근 파출소에 신고했고 남자 친구는 폭행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최근 청소년들의 동거가 무분별하게 확산되고 있다. 서로 사랑하는 사이이건 전혀 모르는 사이이건, 아무 것도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는 '불량동거'가 일부 청소년들 사이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이같은 청소년들의 동거는 어른들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면서 자칫 범죄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마을 공동체와 차단된 공간에서 어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다는 점에서 청소년들의 주요 탈선 장소인 학교나 학원, 공원, PC방, 술집 등보다 훨씬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이번에 발생한 성남 지적장애 소녀 살해 암매장 사건과 10대 알몸폭행 동영상 사건에서도 가해 청소년들은 모두 한 집에서 짧게는 6일, 길게는 한 달까지 동거하며 이같은 짓을 저질렀다.

문제는 청소년 동거를 막는 것이 쉽지 않다는 데에 있다. 일단 인터넷을 통해 은밀하게 거래가 오가거나 당사자끼리 비밀로 동거를 시작하기 때문에 파악이 쉽지 않고, 일단 동거를 시작하면 집 내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

특히 주변 사람들에게는 친척이나 조카라고 말해버리면 의심을 피해갈 수 있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성매매나 폭행 등의 범죄가 일어나도 증거를 잡아내 법적으로 처벌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한국아동청소년심리상담센터 이향숙
소장은 "최근 청소년 동거가 늘고 있는 것은 사회적 문제로 볼 수 있다"며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상황에서 동거를 하게 되면, 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의 범위를 구분하지 못해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것을 잘 알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사회조사연구소 김순흥 교수는 "의식이 성숙되지 않은 청소년들이 드라마와 영화 등 미디어에서 미화되고 있는 동거를 여과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다"며 "이들에게 동거에 대해 먼저 정확히 알려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시키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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