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신 뒤 집을 나와 쭉 혼자 살았어요. 패스트푸드점, 주유소, 중국집, 횟집에서까지 밤낮 없이 닥치는 대로 일했죠. 틈틈이 공부해 검정고시에 붙었을 땐 이제는 남들처럼 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같이 일하던 언니에게 돈을 꿔 준 게 실수였어요. 보지도 못한 사채 수천만 원이 생겨버렸어요. 그 이후로 제 인생은…."

빚 독촉에 시달리던 A씨(22)는 결국 지난해 한 성매매업소를 찾았다가 발이 묶였다. 업주에게 선불금을 빌려 급한 빚부터 갚았다. 열심히 하면 금방 돈을 갚고 나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손님당 10만원씩 하루 200만원` 할당량을 채우기 위해서는 하루도 일을 쉴 수 없었고, 온갖 이유로 매겨진 벌금에 빚은 도리어 불어났다.

A씨는 견디다 못해 업소를 탈출했지만 업주는 그의 빚을 한 대부업체에 넘겨버렸다. 대부업체는 A씨가 거처를 옮길 때마다 기어이 찾아내서 "돈을 갚지 않으면 주변에 성매매 사실을 알리겠다"며 빚 독촉을 해댔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결국 A씨는 성매매여성 쉼터에 상담을 신청했고 상담사의 도움으로 최근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수석부장판사 김정만)에 파산 신청을 준비 중이다.

파산부는 서울시 금융복지센터, 법률구조공단과 함께 사채에 시달리는 전·현직 성매매 종사자들의 파산 신청을 돕고 있다. 파산 절차를 거쳐 `면책`을 받으면 모든 합법·불법 채무관계를 정리할 수 있다.

물론 성매매 업소에서 진 빚은 대부분 불법채권이라 갚지 않아도 된다. 2004년 제정된 성매매특별법에서 `성매매 행위를 전제로 한 모든 채권은 효력을 갖지 않는다`고 규정해 놓았다. 그러나 특별법 시행 이후 업주들은 대부업체들에 채권을 넘겼고 대부업체들은 겉보기에 `합법적`으로 빚 독촉을 거듭한다.

실제 `A신용회사` `B캐피탈` `C대부` 등 각종 신용정보회사와 대부업체들은 성매매 종사자들을 집요하게 괴롭힌다. 매일 조금씩 이자를 받아내기 쉽고, 업소 여성들이 금리 한도 등 대출 관행을 잘 모른다는 점을 악용해 잔인한 추심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업주들이 성매매 여성들에게 성형수술을 강요하면서 대부업자를 소개한다. 성매매 여성들에게 차용증을 받은 뒤 대부업체에 팔아넘기면 업주들이 돈을 떼일 일도 없다.

문제는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서울시 성매매피해자상담소 상담 실적 통계에 따르면 빚 문제와 관련한 상담은 2011년 1497건, 2012년 1502건, 2013년 1693건, 2014년 2045건으로 계속 늘고 있다. 성매매피해상담소 `이룸` 관계자는 "성매매 여성들 상담의 대부분이 사채 관련 채권추심·소송 문제"라며 "채무관계가 복잡하고 액수가 상당할 경우 개인파산제도가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조숙현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여성인권위원장(44·사법연수원 30기)은 "대부업체에 진 빚도 성매매를 해서 갚기로 했다면 불법이고 무효지만 불법채권으로 인정받으려면 성매매 여성들이 직접 소송을 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고 말했다. 실제 많게는 100명이 넘는 채권자에게 일일이 소송을 걸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 막대한 변호사 비용도 문제가 된다고 한다.

파산부 관계자는 "많은 성매매 피해 여성이 악성 빚 독촉에 시달리면서도 막다른 곳에 몰려서야 법원을 찾는다"며 "개인파산제도는 불법적인 채무관계를 한번에 해소해 길게는 수년이 걸리는 소송을 거치지 않고도 이들에게 새 출발할 기회를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부장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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