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강간범 불처벌 의사'... 부모 동의 없으면 무효
서울중앙지법 "불처벌 부모 동의하지 않으면 공소 기각 할 수 없다"
09.02.28 19:36 ㅣ최종 업데이트 09.02.28 19:36 신종철 (sjc017)
 

성폭행을 당한 청소년이 '가해자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밝혔더라도 법정대리인인 부모가 '불처벌 의사'에 동의하지 않으면 재판부는 공소를 기각할 수 없다는 판결이 나왔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김OO(24)씨는 지난해 12월 1일 '원조교제' 알선 채팅사이트에 접속했다가 가출 청소년인 A(14, 여)양을 알게 됐다.

A양은 '조건 만남하실 분 15女'라는 채팅방을 개설했고, 이를 본 김씨는 성매매 대가로 25만원을 주기로 약속하고 A양을 경기도 안산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A양은 먼저 돈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성관계를 가진 뒤 돈을 주겠다'는 김씨의 말에 돈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김씨의 집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김씨는 욕설을 하며 A양의 목 부분을 밀치고 강제로 손을 잡아끈 뒤 나가지 못하게 하면서 "나는 너 같은 가출 청소년을 잡는 경찰이다. 교도소에 가고 싶지 않으면 그냥 하고 가라"고 위협했다.

A양은 당시 김씨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화를 입을 것 같은 두려움에 더 이상 반항하지 못하고 성폭행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A양은 처음에는 김씨가 경찰관이라는 말을 믿지 않았지만, 명함을 보여주고 경찰서 사이트를 보여줘 믿게 됐다고 나중에 법정에서 진술했다.

결국 김씨는 강간한 사실이 인정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청소년성보호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그런데 증인으로 법정에 출석한 A양이 "김씨의 처벌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재판부에 밝혔다.

문제는 청소년성보호법에 따르면 김씨 범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해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였던 것. 이에 김씨 변호인은 법원에 공소기각 판결을 주문했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서울중앙지법 제26형사부(재판장 배기열 부장판사)는 최근 김씨에게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과 120시간의 사회봉사명령을 선고한 것으로 27일 확인됐다.

이 사건의 쟁점은 비록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했더라도, 법정대리인으로서 피해자의 아버지가 강력한 처벌을 탄원하고 있어 만 14세의 미성년자인 피해자가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단독으로 불처벌 의사표시를 할 수 있는지, 이 경우 법원은 공소를 기각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먼저 "종래 친고죄로 규정돼 있던 것을 반의사불벌죄로 개정한 이유는 처벌을 강화해 청소년의 성보호를 보다 두텁게 하기 위한 것이지, 처벌할지 여부를 오로지 청소년인 피해자 본인의 의사에만 맡기고 친권자 등 법정대리인의 후견적 역할을 배제하려는데 입법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어 "종래 친고죄로 규정돼 있을 때는 청소년인 피해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법정대리인은 독립해 고소를 제기할 수 있었다"며 "개정법을 오로지 청소년인 피해자의 불처벌 의사표시가 있으면 법정대리인의 동의와 관계없이 무조건 처벌할 수 없는 것으로 해석한다면 종전에 비해 처벌이 강화되기는커녕 도리에 그 반대가 되는 경우도 생겨 개정법의 입법취지가 몰각된다"고 지적했다.

또 "현실적인 측면에서도 피해자의 불처벌 의사표시가 있으면 법정대리인의 동의와 관계없이 처벌할 수 없다고 한다면 회유나 협박, 수술 등의 방법으로 피고인 측이 판단력이 미숙한 어린 청소년 피해자로부터 부당하게 불처벌 의사표시를 받아낼 위험성도 있다"고 우려했다.

재판부는 "형벌법규는 문언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 및 적용해야 하고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지나치게 확장해석하거나 유추해석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만, 청소년성보호법 제3조도 '청소년의 권익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며, 그 가족의 권리가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는 점 등을 고려하면 이 법률 제16조 단서에 규정된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는 법정대리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로 해석함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피해자의 법정대리인인 아버지의 동의가 없는 이 사건에서 피해자 본인이 불처벌 의사표시만으로 공소를 기각할 수는 없다"며 피고인 측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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