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쉬운 가출, 브레이크 없는 일탈

[위험수위에 다다른 청소년 범죄③] 숙박업소·알바 급증에 가출 손쉬워져

[ 2009-04-16 06:00:00 ]

CBS노컷뉴스 박슬기 기자


##스튜어디스를 꿈꿨던 미선이(가명·18)는 지난 2007년 여름 가출했다. 엄마, 아빠가 매일같이 툭하면 싸우는게 싫었다. 결국 '더이상 같이 못살겠다'며 엄마,아빠는 이혼하기로 했다. 하지만 미선이를 맡는 문제를 놓고 부모들은 또 싸웠다. 상대방에게 미선이를 떠넘긴 것이었다. 이 모습을 보고 있던 미선이는 그 길로 바로 집을 나와 버렸다.

처음 가출을 결심했을 때는 '잠자리'와 '돈'이 가장 걱정됐다. 하지만 가출생활은 생각보다 괜찮았다. 몇 천원만 있으면 밤새 PC방에서 게임을 하거나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지낼 수 있었다. 지하철 역을 배회하면서 알게된 또래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그런 곳에서 지내는 것도 재미있기까지 했다.

싫증이 나면 돈을 모아 모텔에서 자기도 한다. 모텔에서는 미성년자 여부를 검사하지만 성년이 된 아는 언니의 주민증으로 방을 잡을 수도 있고 진한
화장을 한 채 남자들과 함께 들어가면 검사도 하지 않았다. 조금 외진 곳에 있는 모텔일수록 투숙하기 쉬웠다.

돈이 다 떨어지면 숙식을 제공하는 주유소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해 잠자리와 돈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했다. 하지만 월급은 쥐꼬리에 이래라 저래라 잔소리하는 어른들이 싫어 금방 그만두고 나왔다.

가출생활도 하다보면 요령이 생긴다. 밤에 지하철 역이나 술집 근처를 배회하다 보면 돈을 주며 숙식을 해결해주겠다고 접근해오는 남자들도 많았다.

한번은 기차역 근처에서 친구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옆에 있던 50대 노숙자 두 명이 다가 오더니 "오늘 어디서 자느냐"며 "돈 줄테니 잘 데 없으면 따라오라"고 해 그들을 따라갔다.

무서웠지만 잘 곳과 돈이 필요했다. 그들은 어느 상가건물의 반지하방으로 미선이와 친구를 데려갔다. 그리고는 3만원을 손에 쥐어주며 미숙이를 덮쳤다.

처음에는 '원조교제'라 거북했지만 '가출을 좀 오래했다 싶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일'이라는 언니들의 말을 듣고는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인터넷 채팅을 통해 알게 된 남자와 돈을 받고 만나기도 했다. 새벽에 채팅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혼자 자취하는 사람들이어서 상대남이 "한번 만나자. 집에 놀러오라"며 성매매를 먼저 제안하기도 하고 미선이가 "잘 곳이 필요하다"며 돈을 받고 남자집에 찾아가기도 했다.아니면 잠깐 사귀었던 남자친구 자취방에 가 며칠씩 먹고 잔 적도 있다. 가출생활에서 잠잘 곳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돈이 떨어지자 어느 날은 같이 지내던 언니 집을 털기로 했다. 언니의 엄마가 출근한 사이 창문으로 몰래 들어가 현금과 상품권 50만원 어치를 훔쳤다. 금반지와 시계도 갖고 나왔다. 이 일로 경찰서에 갔지만 언니 엄마가 용서해줘 금방 풀려났다.

미선이는 현재 쉼터에 들어갈지 아니면 새로 생긴 남자친구의 자취방으로 들어갈지 고민중이다.

##경기도의 한 청소년 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병호(가명·15)는 이번이 벌써 네번째 가출이다.

여섯살때 부모님이 이혼하고 난 뒤 할머니 손에서 자라다 할머니마저 돌아가시자 아빠와 다시 살게 됐지만 아빠는 이미 새엄마와 재혼한 상태였다.

새엄마의 구박과 눈치에 병호는 재차 가출을 했다. 처음에는 경찰에 실종신고를 하며 병호를 찾았던 아빠도 가출이 잦아지자 더이상 병호를 찾지 않았다.

첫 가출 때에는 집에서 갖고 나온 돈으로 찜질방이나 PC방에서 밤을 새웠다. 그 다음부터는 돈을 아끼기 위해 친구 집에서도 지내고 숙식이 제공되는 나이트클럽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올초 완전히 집을 나온 병호는 아는 사람 하나 없는 경기도로 올라온 뒤 청소년 쉼터에 자리잡았다. 하지만 규정상 그곳은 3개월밖에 머무를 수 없어 다음달이면 나가야 한다. 그래도 걱정은 별로 안된다. 24시간 운영하는 식당이나 나이트클럽, 편의점 등에서 야간이나 새벽조로 일을 하면 숙식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니면 인터넷 동거카페를 통해 '룸메이트'를 구해볼 생각이다.

손쉬워진 가출,
브레이크 없는 일탈


청소년들의 가출이 쉬워졌다. 그 기간도 길어지는 추세다. 청소년들도 쉽게 잠잘 곳을 얻고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PC방과 찜질방,모텔 등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하룻밤을 지낼 수 있는 시설들이 급증한데다 햄버거·피자가게와 치킨집 등 청소년들의 아르바이트 자리도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 경기도에 있는 청소년 쉼터 관계자는 "예전에는 가출하면 지낼 곳도 마땅치 않고 학생들의 아르바이트도 흔하지 않아 가출 자체가 어려운데다 그 기간도 길지 않았다"면서 "하지만 요즘에는 찜질방 등지에서 숙식을 해결해 가출도 장기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가출이 손쉬워지면서 가출 청소년들이 범죄에 물들 우려도 급증한다는 사실이다. 가출 청소년 대부분이 학교를 중도에 그만두면서 지도나 규율에서 벗어나는데다 행동을 개선시켜주고 지적해줄 수 있는 부모로부터도 벗어나 있어 자기 자신을 제어할 수 없는 상태로 빠져들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 관계자는 "가출 청소년들이 폭행이나 절도 등 범죄를 저지르거나 술 마시고 길가에 쓰러져 자기도 해 눈에 띌 때마다 인근 쉼터로 인계하고는 하지만 금방 또다시 뛰쳐 나온다"고 전했다.

    한국청소년범죄예방협회 박기웅 팀장은 "청소년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할 공간이 우리나라에는 많지 않다"며 "이런 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출을 하게 되고, 한번 가출하게 되면 청소년들은 호기심에 이것저것 많이 해보려하기 때문에 범죄 유혹에 쉽게 빠질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인터넷 시대에 익숙한 청소년들을 어른들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청소년들의 범죄를 넋놓고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며 "이를 막기 위해 어른들이 미리 한발 앞서 청소년 문화 시설을 확충하는 등 사회적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thu22@c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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