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성폭행女에 "왜 저항하지 않았나?"…2차피해 불러

 

 


2010-03-19 08:40 CBS사회부 조은정·김효은·최인수 기자

김길태 사건으로 성폭행(강간)을 비롯한 성폭력 범죄의 잔혹함이 새삼 조명 받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는 성폭력 범죄가 해마다 증가할 뿐 아니라 해외와 비교해서도 월등히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성폭행 범죄의 경우 왜곡된 성문화와 미미한 처벌로 인해 일상생활에서도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어 특히 심각하다. CBS는 3회에 걸쳐 갈수록 만연해 지고 있는 성폭행 범죄의 실태와 원인, 대안을 모색해 본다.[편집자 주]

◈ 친고죄 규정 폐지해야

여대생 A씨는 평소 알고 지내던 남자 B씨에게 강간을 당하자 B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경찰은 B씨를 조사했지만 B씨는 처벌받지 않았다.

B씨의 부모가 A씨의 학교에까지 찾아와 합의를 요구해 A씨가 2주일 만에 고소를 취하했기 때문이다.

B씨는 명백한 성폭행(강간)범임에도 처벌받지 않고 풀려난 것은 현행 성폭력특별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 성폭행을 친고죄로 규정한 때문이다.

즉, 피해자가 강간을 당했을 때 상해나 치상이 발생하지 않으면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것이다.

성범죄 상담 전문가들은 성폭력 범죄를 줄이려면 강간 사건을 인지하게 되면 바로 수사기관이 수사할 수 있도록 친고죄 규정을 폐지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성범죄를 저지르고도 사법처리를 면해본 경험이 있는 가해자들은 다음번에 또 비슷한 범죄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이어진 활동가는 "강간은 대부분 지인에 의해 발생하므로 피해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렵게 만든다"며 "가해자를 무조건 처벌하는 동시에 추가로 배상을 청구할 수 있도록 법제도를 다듬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반론도 만만치 않다.

서울의 한 경찰관은 "친고죄는 피해자가 공개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라며 "이 규정은 피해자가 합의 또는 처벌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존치 필요성에 표를 던졌다.

◈ 수사과정에서 2차 피해

20대 여성인 C씨는 지난해 전 남자친구에게 강간을 당해 경찰에 고소했다.

그러나 C씨는 경찰로부터 "헤어진 이후에도 계속 성관계를 했느냐", "혹시 지금도 사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모욕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결국 C씨는 수사 중간에 고소를 취하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경찰에 성폭행 사실을 신고한 피해자들이 수사 도중 고소를 취하하는 경우가 많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이른바 '2차 성폭력'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20대 여성인 D씨도 전 남자친구에게 강간을 당한 뒤 경찰 조사를 받으면서 성폭행 발생 당시 D씨가 소리를 질렀던 상황을 설명해보라는 주문을 받았다.

D씨가 당시 상황을 재연하자 경찰은 "왜 그렇게밖에 소리를 못 질렀느냐. 더 크게 소리쳤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D씨를 다그쳤다.

고소를 취하한 D씨는 상담소에서 "전 남자친구가 무서운 사람이라 더 심하게 저항하지 못했던 것"이라며 눈물을 훔쳤다고 한다.

이에 대해 서울지방경찰청 여성청소년계 관계자는 "피해 여성이 보상을 노리고 고소를 한 상황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에 성폭행 당시의 상황을 묻는 것"이라고 말했다.

◈ 성폭력 전담수사인력 부재

성범죄 상담 전문가들은 경찰의 전담조사 인력이 부족한 것도 성범죄 증가의 한 가지 원인으로 꼽고 있다.

경찰은 2001년 성폭력 범죄 전문조사 조직으로 여성청소년계를 신설했지만 이곳은 가해자가 만 19세 미만일 경우에만 수사를 진행하고, 가해자가 성인 남성일 경우에는 강력계로 사건을 이관하고 있다.

그러나 2008년 현재 강간을 저지른 청소년은 1,589명인데 비해 성인은 11,169명으로 그 수가 7배가 더 많다.

이어진 활동가는 "사실상 성폭력 범죄를 전담해서 수사하는 기관이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전담수사기관인 여성청소년계의 경우도 전담수사관들이 아직도 남성들이 많은 것도 문제다.

◈ 부실한 성교육도 문제

성범죄를 줄이기 위해서는 청소년들에 대한 성교육이 필요하다. 성범죄에 대한 정확한 인식이 있을 때 성범죄를 예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성교육은 아직 부실하기만 하다.

초중고의 경우 성폭력과 성매매 예방 및 피해자 보호에 관한 교육 등은 1년에 고작 2시간만을 교육 받는다.

이마저도 초등학생들은 성매매 예방 교육 대상에서 제외된다.

김영란 나무여성인권상담소장은 "학교 성교육이 학교장의 재량에 따라 결정되다보니 성교육이 부족한 학교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성교육을 시켜 성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김 소장은 성폭력 가해자에 대한 교육에 대해서도 "형기를 마친 이후라도 정기적으로 성교육을 받도록 하고 지속적인 상담을 받도록 하는 것이 성범죄 재발을 막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