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②] 역대 최다 청원…왜 ‘박사방·N번방’에 분노하는가?

     

   
icon-alertic_multitracktest이른바 'n번방' '박사방' 사건으로 불리는 텔레그램 내 성 착취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가 커지고 있습니다. 용의자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 동의자 수는 23일 기준 220만 명을 넘겼습니다. 역대 최다 기록입니다.

올해 초, 이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20여 개의 여성단체가 연합해 '텔레그램 성 착취 공동대책위원회'가 구성됐습니다. KBS는 서울 성북구에 있는 여성인권센터 '보다'에서 이 단체 소속 3명의 여성 활동가를 만나 여성들이 느끼는 '이유 있는 분노'에 대해 들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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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n번방', '박사방' 관련 국민청원이 역대 최대 동의자 수를 기록했다. 여성들이 공분하는 가장 큰 이유가 무엇인가?

신성연이 : 짧은 시간 안에 굉장히 많은 분들이 이 청원에 동의해서 서명을 남긴 건 이 문제에 대한 '분노'를 잘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해요. 특히, 그렇게 단시간에 많은 분들이 서명한 것은 여성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는 '공공의 안전을 위협하는 범죄라는 것'을 확실하게 해야 한다는 요구를 분노로 보여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하영 : 심각한 범죄에 대해선 포토라인에 세우겠다는 원칙을 세웠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범죄자에 대해서는 신상공개를 한다거나 포토라인에 세우지 않았었단 말이에요. 여성들이 분노하는 건 성범죄가, 성 착취가 왜 심각한 문제가 아니냐는 거고. 성범죄가 심각한 사회 문제이기 때문에 우리 사회의 합의를 통해서 포토라인에 세워야 한다, 신상공개 해야 한다는 요구를 보여준 것입니다.

Q.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 기존 성범죄와 어떤 점이 달랐나?

이하영 : 기존 성폭력 사건에서는 가해자가 누군지 특정이 되고 소수의 1명이거나 여러 명이었어요. 그런데 디지털 성폭력 같은 경우는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가해에 참여하고 있어요.
'박사'라는 사람이 최초의 사람은 아닐 거잖아요. 원조 박사들이 있을 텐데, 그 사람들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박사가 등장한 거라고 생각해요. 이번에 박사가 제대로 처벌받지 않으면 제2의 박사, 제3의 박사가 또 등장할 게 분명하거든요. 그렇기 때문에 좋은 선례를 남겨서, 이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걸 분명하게 보여줘야 할 것 같아요.


신성연이 : 텔레그램 채팅방에서 집단의 사람들이 어떤 '이미지'에 대해서 언어 성폭력을 저지르게 될 때는 이게 '놀이문화'로 흘러가는 양상이 포착돼요. 뜬금없이 채팅방에서 여성의 이름을 외친다든가, 텔레그램에서 스티커를 만들어서 배포할 수 있는데, 피해 촬영물을 스티커로 만들어서 대화창에 도배한다든가. 재밌는 놀이가 되었을 때, 이 행위에서 죄책감이나 죄의식을 느낄 가능성은 낮아지게 되죠. 그래서 더 처참한 장면들이 포착된 것 같아요.

Q. 오프라인에서 일어나는 성범죄와 구별했을 때,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에게 유독 힘들게 다가오는 부분이 있다고 들었다.

유승진 : 사이버 성폭력이라고 하면 페이스북 끄면 되지, 인스타그램 끄면 되지, 온라인공간에서 인터넷 끊어버리면 되지 왜 그걸 현실 세계에서 힘들어해? 이런 말씀을 굉장히 많이 하세요. 하지만 여성의 신상정보가 공개되면 많은 남성들이 그 여성의 신상정보를 더 캐내서, 어디에 사는지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도 다 파악을 해요. 대화방에서 관전하는 많은 남성들이 피해자의 집에 가서 인증샷을 찍는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고. 온라인 성폭력이라고 해서 오프라인 공간과 온라인 공간이 완전히 분리돼서 일어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저희는 더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어요.

이하영 : 피해자에 대한 '탓하기'가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에선 여전히 작동하고 있어요. '내가 뭔가 잘못하지 않았나?', '어떤 빌미를 주지 않았나'하는 죄책감들이 피해를 호소하거나 지원을 요청하거나 신고하길 주저하게 만들어요.

Q. 이번에 유독 미성년 피해 여성들이 많았다. 이에 대한 공대위 측 의견은 어떤가.

유승진 : 본인이 성 착취를 당한 것을 잘 모르는 사례도 실제로 많이 들어와요. 온라인 '그루밍(길들이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라고 피해자께 다시 알려드리기도 해요. 하지만 미성년자 피해자라고 해서 성인 피해자보다 더 트라우마를 심하게 겪는다고 단정할 순 없다고 생각해요. 미성년자니까 더 고립되고, 더 학교를 못 나가고, 더 힘들고, 아플 것이라는 건 편견일 수도 있다는 것이죠. 우리가 만들어놓은 '피해자다움'이라는 프레임에 갇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요.
이하영 : 미성년자들은 가지고 있는 정보가 성인에 비해 적다 보니까 범죄 요인에 더 쉽게 노출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범죄 노출이 되면 피해를 당한 고통은 성인이든 미성년자든 같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어요.다만, 아동청소년들은 자원이 부족하고 더 취약한 상황이기 때문에 성범죄를 유인하는 그루밍이라고 부르는 행위와 관련된 법리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수사가 진전되고 있는데, 현 상황에 대해 느끼는 점 혹은 한계가 있다면.

신성연이 : 2016년에 소라넷이 폐쇄되면서 (음란물 및 성 착취물이) 여러 플랫폼을 경유하며 이동을 해왔죠. 예를 들면 텀블러같은 플랫폼에서도 여성을 '노예'라 부르는 범죄들이 있었거든요. 그렇게 활개를 치다가 텀블러에서 단속을 하면서 이 사람들이 텔레그램으로 옮겨왔고, 지금은 또 '디스코드(게임 전용 메신저)'로 옮겨갔어요. 이번에 박사 잡히고나서 주거지에서 현금 1억 3천만 원 입수됐다고 했을 때 "박사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1억밖에 못 벌었느냐", "역시 (음란물) 유포가 더 돈이 되는 것 같다." 이런 얘기가 대화방에서 오간다는 거예요.

이하영 : 우리가 경찰이나 정부에게 계속 들었던 말은 "못 잡는다."라는 말이었거든요. 소라넷 때도 그랬듯 굉장히 오랫동안 문제를 제기했는데도 불구하고 문제가 가볍기 때문에 잡을 수 없고, 다양한 이유를 들며 문제가 아니다라는 답만 들어왔는데 이번 경우를 보면 의지만 있으면 "잡을 수 있다."라는 게 증명됐다고 생각해요.

유승진 : 오프라인 공간에서 지나가는 사람 때려도 된다고 생각하지 않잖아요. 근데 온라인 공간에서는 오프라인에서 적용되던 룰이 갑자기 사라지는 거예요. 갑자기 여성을 폭행해도 되고, 여성에게 욕설해도 되고 여성을 능욕해도 되고. 온라인 공간 내에서 오프라인에서 적용되는 윤리나 규율들이 온라인 전반에 적용되는 큰 틀의 정책들이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로 상담을 원하는 분은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2, 한국여성민우회 02-335-1858, 여성긴급전화 국번없이 1366, 대한법률구조공단 132, 한국여성의전화 02-2263-646,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지원센터 www.women1366.kr/stopds 로 상담을 요청하시면 됩니다.

이유민 기자 (reason@kb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