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 성매매집결지. ©이정실 여성신문 사진기자

인권’이란 명제에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역설의 과거를 국제엠네스티가 지금 여기로 소환했다. ‘성노동’을 인정하자는 2015년 8월 11일 국제엠네스티의 결정은 결국 ‘성매매’ 안의 모든 착취자들, 성 매수자, 직접적 알선 행위를 하는 포주와 이를 둘러싼 소개업자, 투자자 등을 포함한 인신매매 자본가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이들의 범죄행위를 사업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성매매는 약자에 대한 착취를 기반으로 한다. 성별과 계급, 인종 등 모든 범위에서 상대적 약자에 위치한 이들의 몸을 성적 대상으로 이용하고 모멸감을 안겨주는 악질적 노예제가 실천되는 것이 바로 성매매다. 성매매 안에서 착취의 대상이 됐던 많은 여성이 이를 증언하고 있다.

성매매 안에서 팔리는 대상은 아동, 청소년, 여성이 대부분이고 구매하는 이들은 남성이다. 남성 중에도 부유한 계급의 남성 구매자가 갖는 기회는 무한대일 수밖에 없다. 남성 내부에서도 계급, 인종 등 권력 간의 차이가 구매력의 차이를 만든다. 이러한 차별적 권력은 낮은 계급의 남성들에게 대상이 되는 여성에 대한 혐오범죄를 유발한다.

우리에게 낯익은 이름인 연쇄살인범 유영철에게 가장 손쉬운 먹잇감이었던 성매매 여성들은 자신을 소외시키는 사회에 대한 불만을 덧씌울 수 있는 대상이었다. ‘왜 모든 이들에게 팔리는 것들이 나를 무시하는가’에서 시작되는, 권력에서 배제된 남성의 이러한 혐오범죄 행위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식민지, 성매매 여성을 대상으로 자행하는 지배 욕구의 분출이다.

성매매는 인권이란 말이 작동할 수 없는 영역이다. 어떻게 ‘돈’이란 권력으로 인간을 성적 대상물로 구매하고 사용하는 행위를 ‘인권’이란 이름으로 안을 수 있는가.

엠네스티의 이번 결정은 ‘인권’에 여성이 존재하지 않았던 오래전 역사의 소환이고 퇴행이다. 여성을 소유물로 여기는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1세부터 포함해 여성을 차등 가격을 매겨 성노예로 매매하고 성매매가 합법화된 국가에서 처녀를 경매하는 것이 아무런 제재 없이 이뤄지는 모습을 보았다. 인권에 여성이 존재하기 위해 그토록 많은 여성이 피를 흘려왔는데 인권을 수호한다는 국제단체조차 이를 옹호하고 나섰다. 인류의 불행한 역사를 되돌리는 국제엠네스티에 의해 여성은 인권에서 제외된 존재가 됐다.

여성 인권을 성매매를 할 수 있는 권리로 등치시키는 국제엠네스티의 불행한 사태를 여과시킬 힘이 우리에게 있기를, 오히려 이러한 퇴행적 행태가 우리에게 강제적 성찰을 동반한 반전의 ‘힘’을 키우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성노동을 주장하는 당사자의 입장은 여전히 중요하다. 하지만 당사자를 내세워 그들이 원하면 된다는 발상은 얼마나 위험한가. 그녀들에게 ‘선택’했다는 것으로 모든 책임을 전가하는 너무나 손쉬운 온정주의적 타협으로 ‘인권’은 지켜지지 않는다. 또 다양한 당사자 목소리 중 유독 성노동만을 유일한 것으로 채택하는 입장 또한 선택이 아닌가.

한국의 성매매경험당사자네트워크 ‘뭉치’는 “성매매 여성의 생계를 핑계로 성 매수자와 성매매 알선업자에 대한 반인권적 행위에 대한 처벌을 미루고, 이러한 행위를 방지할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으려는 이들이 과연 무엇을 얻기 위해 그리 하는지 물어달라”고 한다. 성노동자를 위해 성 매수자와 성매매 알선업자를 포함한 성매매 시장을 규제하지 말라는 엠네스티의 주장이 과연 무엇을 지키기 위한 것인지, 적절한 규제 없이 약자가 보호받는 시장이 역사상 존재했는지를 묻고 싶다. 더구나 사회적으로 가장 취약한 계층이 성매매 여성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이런 주장을 했다는 것은 21세기의 가장 황당한 이야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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