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거래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성매매'다. 10여년 전 성매매특별법이 시행되면서 집결지에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듯 보였지만, 오히려 변종 성매매 유입 등으로 활성화·음지화되고 있다.

가난, 학대, 성폭행으로 멍들고, 사고가 온전히 성장하지 않은 10대는 벗어날 수 없는 '성매매의 늪'에 쉽게 빠져든다. 타이르는 어른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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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의회 여성가족교육위원회가 지난달 22일 도내 A상담소, 1월16일 부산광역시 해운대에 위치한 B상담소를 찾았다. 인천일보가 동행 취재했다.

"16살 때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하려니 부모님 동의서를 받아야 했어요. 엄마는 어디 있는지 알 길이 없고, 아버지의 이유없는 폭력을 견디다 못해 도망나온 집에 다시 들어가기는 죽기보다 싫었어요."

2015년 1월 도내 A상담센터에 입소한 김희수(가명·27)씨는 13세부터 16세까지 노래방에서 남자들을 상대로 '도우미'를 하고, '조건만남'을 가졌다. '나쁜 짓'이란 개념조차 없었다. 오로지 '일을 해야만 잘 곳이 있고, 먹을 수 있다'는 생각 뿐이었다.

가정이 무너지면서 그녀의 삶도 망가졌다. 부모님이 이혼 후 각자 재혼하면서 6살 꼬마는 버려졌다. 엄마는 연락이 끊기고 친할머니와 살았다. 그래도 아버지가 그녀를 찾기 전까지는 평범하게 살았다. 중학교 1학년 한달정도 다닐 무렵, 아버지가 다시 이혼하면서 새어머니는 이복동생을 버리고 나갔다. 동생을 돌보기 위해 서산에서 인천으로 전학갔다.

하교 후 동생이 있는 어린이집으로 곧장 가야 했다. 친구들과 어울릴 수도 없었고, 왕따까지 심했다. 무엇보다 힘들었던 것은 아버지의 이유 없는 폭력이었다.

"무서웠어요. 집에 들어가는 것보다 공중화장실에서 잠자는게 더 나았어요."
그녀가 처음으로 성매매 집결지에 온 것은 갓 20살이 될 때였다. 다른 일을 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사회마저 그녀에게 냉정했다. 주유소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려 했는데, 20살이 넘어서도 이력서에 '초졸'이라고 돼 있어 매번 무시당했다고 한다.

집장촌에서는 저녁 6시부터 다음날 아침 6시까지 일한다. 그녀는 사람처럼 살고 싶었다. 죽을 힘을 다해 검정고시 학원도 가려했고, 미용사 자격증도 따려했다. 그러나 몸이 버티지 못했다. 하루라도 일을 못하면 100만원이 넘는 돈이 '빚장부'에 올랐다.

김희수씨의 오른쪽 손목에는 여러개의 팔지가 차여 있다. 그녀는 손목을 바라보며 담담히 회상했다.

"이런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우울증이 심했어요. 도망나와 의지할 곳도 없이 여관 달방에서 살다가 손목을 긋고 1366으로 전화했어요. 마지막으로 내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지난해 1월부터 센터의 도움으로 1년간 병원치료를 받았다. 10월부터는 검정고시 학원도 다니고 있다. 이곳 센터에 있을 수 있는 시간이 1년6개월 남았다. 정부에서 2년6개월로 정해 놨기 때문이다.

"고등과정 검정고시 합격까지만이라도 여기 울타리 안에서 공부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최소한 아르바이트 이력서에 '고졸' 학력을 쓸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요."

그녀의 꿈은 간호사다. 현실적으로 대학 진학이 어려워 간호조무사로 바꿨지만, 꿈꿀 수 있어 설렌다. '이곳에 머물 수 있는 남은 시간동안 뭐라도 배워서 나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하다. 이대로 나가게 된다면 다시 과거와 같은 생활이 반복될까 두렵기 때문이다696124_218784_3551.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