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영 기자

ㆍ“여성 차별의 구조적 문제, 사회가 응답해야”
ㆍ법리적 방안 ‘차별금지법’
ㆍ‘혐오범죄 가중 처벌’ 논의

“범죄의 이유가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여성 차별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우리 사회에 변화란 있을 수 없다.” “여혐(여성혐오) 사회가 여기에 있는데 왜 보지를 못하지….” “칼끝이 향한 곳이 분명한데 어떻게 눈먼 칼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지난 23일까지 강남역 10번 출구 외벽에 붙어있던 1000개 이상의 포스트잇은 한결같이 “이 사회가 가지고 있는 보편적인 여성혐오를 인정하고 이제는 변하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었다. 강남역 인근 살인사건을 계기로 여성혐오 문제가 한국 사회의 수면 위로 떠올랐지만 어떻게 여성혐오와 이로 인한 범죄를 근절할 수 있을지에 관해선 의견이 분분하다.

일단 겉으로 드러나는 혐오와 차별만이라도 규제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성별·병역·나이·출신 국가·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한 정치·경제·사회적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이 대표적이다. 한국에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2007년쯤부터 논의되기 시작했으나 보수 개신교계가 ‘동성애 반대’ ‘종북 척결’ 등을 내세우며 거세게 반대해 지난 19대 국회에서 통과되지 못했다. 20대 총선을 앞둔 지난 3월 여성단체들은 성적지향·성별 정체성을 차별금지 사유로 예시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을 ‘핵심 젠더과제’와 ‘선결과제’로 선정해 각 정당에 제출한 바 있다.

혐오범죄에 대한 가중 처벌도 논의되고 있다. 정의당 이상구 대변인은 지난 19일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혐오범죄에 대한 가중 처벌이 필요하다. 혐오범죄 가중 처벌은 여성뿐만이 아니라 장애인,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등 차별과 혐오에 늘 시달리는 모든 사람들을 향한 범죄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온라인상 여성혐오 표현이 여성에 대한 왜곡된 관념을 확대·재생산하므로 이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한다는 문제제기도 이어져 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여연)은 ‘온라인상의 여성혐오 표현 모니터링 보고서(2014)’에서 “외모 비하, 성기를 언급하거나 강간을 암시하는 등의 성적 위협 같은 온라인상 여성혐오 표현은 여성에 대한 이분법적 구분과 편견을 사실화하고 여성의 인격과 주체성을 부정한다”고 밝혔다. 여연은 또한 “이는 여성에게 심리적 충격을 주며 여성의 공론장 참여를 악화시키는 문제로 이어진다”며 “상시 모니터링 체계를 구축하고 온라인 사이트별 자율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같은 법적·제도적 해법은 겉으로 드러난 문제점을 사후적으로 시정 및 보완하는 데에 그칠 뿐이라는 한계를 갖는다는 지적도 있다. 전문가들은 근본적 변화를 위해선 ‘여성혐오가 문제’라는 사회적 공감대가 커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여성들이 나서 구조적 차별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사회가 응답해야 한다. 개별 여성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구조적 문제로 연결돼 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우리는 이 구조를 어떻게 바꿀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여성주의 활동가 황주영씨는 “근래 여성에 대한 폭력을 우울증이나 분노조절 장애로 치부해 병리화하려는 경향이 있다. 젠더적으로 권력관계가 기울어 있는 상황에서의 폭력을 개인 문제로 치부하면 문제점을 토론할 기회조차 생기지 않는다”고 밝혔다. 여성학자 박이은실씨는 “‘모든 남성이 여성혐오를 하는 건 아니니 일반화하지 마라’보단 ‘여성혐오적 가치관이 사회에 뿌리내리지 못하도록 하자’는 주장이 더 마땅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