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도종환

저것은 벽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우리가 느낄 때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푸르게 절망을 다 덮을 때까지
바로 그 절망을 잡고 놓지 않는다.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


저는 도종환 시인의 이 시(詩)를 얼마 전 있었던 태봉고등학교 학부모 연수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이 시를 읽어준 이는 태봉고 교장 여태전 선생님이었습니다. 올 3월 입학 예정인 아이들의 예비학부모를 포함한 100여 명의 학부모를 대상으로 교장 선생님이 특강을 했습니다.

이 특강에서 여 교장은 여러 편의 시를 읽어주었습니다. 그 중에서 특히 와닿았던 게 담쟁이라는 시였습니다. 담쟁이는 공립대안학교인 태봉고의 교육철학을 상징한다고 했습니다.

여 교장이 소개해준 시 말고도 우리가 새겨볼만한 좋은 인용구들이 많았습니다.


칼릴 지브란의 이 글귀도 좋았습니다. "그대의 아이들은 그대의 아이들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을 갈망하는 생명이다."


미래학자인 엘빈토플러는 이런 말도 했더군요.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을 배우기 위해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참 충격적인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 이유를 토플러는 이렇게 부연합니다.


"오늘 있었던 직업이 내일 사라질 수도 있고, 오늘 없던 직업이 내일 생길 수도 있을 만큼 변화가 빠른 것이 미래사회다. 그런데도 미래사회에선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아이들을 준비시키고 그것조차도 성공적으로 수행하지 못하는 학교는 학생들의 미래를 훔치고 있다."


그래서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행복지수는 54% 정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네덜란드가 가장 높았고, 핀란드, 독일, 프랑스, 영국, 미국은 80%가 넘었습니다.


더 가슴에 와닿았던 말은 여태전 교장의 결론이었습니다. "자기 혼자 잘 먹고 잘사는 것을 꿈꾸는 젊은이들로 가득찬 사회의 미래에는 희망이 없다."


그래서 태봉고등학교는 "토끼를 깨워서 함께 가는 거북이가 되어야 한다"는 걸개그림을 학교 외벽에 크게 걸어놓았습니다.


강의를 해준 여태전 교장 선생님입니다.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지만, 학교 안에서, 그것도 교장 선생님으로부터 이런 강의를 받고 보니 적지 않은 감동이었습니다.

여 교장은 강의 전에 10여 권의 책을 준비해왔습니다. 그리고 강의 중에 간간이 학부모들께 책을 나눠줬습니다. 저도 손을 번쩍 들어 한 권의 책을 받았습니다.


바로 이 책이었습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 책이 너무 흥미진진해 어젯밤 단숨에 읽어버렸습니다. 이 책에 대한 후기는 다음에 한 번 정리해보려 합니다.


학교 교직원들의 소개방식도 흥미로웠습니다. 여태전 교장이 김용택 선생님을 소개하고, 김용택 선생이 그 옆의 여의봉 선생님을 소개하고, 소개받은 선생님의 자기 옆 선생님을 소개하는 방식이었습니다.

최근 수도권에서도 공립대안학교 설립 논의가 나오고 있더군요. 그걸 설립하느냐 마느냐의 논의를 떠나 저는 우리나라의 모든 학교가 이렇게 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