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인에서 부탄인으로... 뭐가 달라졌을까?
부탄 여행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
10.04.13 20:40 ㅣ최종 업데이트 10.04.14 10:40 icon_artman.gif 김은주 (cshchn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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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제파의 부탄 여행기. 부탄이 여행하기에 까다로운 나라인만큼 여행기를 구하기 어려웠다.그래서 발견하는 순간 매우 감격했고, 읽으면서도 좋았다.
ⓒ 꿈꾸는 돌
icon_tag.gif 부탄

이란을 다녀온 지 1년 정도 지났다. 또 어딘가로 가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불쑥 치밀었다. 1년 후가 될지 아니면 몇 년이 지나야 할지는 모르지만 숙제를 받아놓은 사람처럼 다음 여행지를 물색하곤 했다. 언제 떠나든 떠날 곳은 미리 정해놓아야 한다는 신념하에 열심히 여행기를 찾아 읽으면서 다음 여행지를 물색했다.

 

그러다가 부탄이라는 나라를 발견했다. 히말라야 영봉 아래 위치한 나라로 고도가 높다는 것도 마음에 들고, 인구가 60만 정도 되는 작은 나라라는 것도 좋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구미에 당기는 것은, 자국의 문화를 보호하기 위해 관광객을 연간 1만 이하로 제한한다는 점이었다. 돈에 혈안이 된 나라는 아니라는 뜻이니까. 이는 곧 숭고한 것을 지키려는 마음이 큰 나라라는 뜻이다.

 

그랬다. 난 정신적인 나라를 가고 싶었다. 그래서 마음 한 구석에 부탄이라는 씨앗을 뿌려놓고 있었다. 이 씨앗은 언젠가 발아를 할 테고 그러다보면 어느날 부탄을 갈 수 있겠지 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날 도서관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하늘로 솟아오를 듯이 기뻤다.

 

여행자를 연간 1만 이하로 제한하고, 또 하루 체류비용을 200불로 규정하고 있기에 여행자에게는 꽤나 까다로운 나라라서인지 부탄 여행기가 별로 없었는데 우연히 이 책을 발견하자 하늘의 계시인 것처럼 부탄은 내게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마음에 부탄이라는 씨앗을 뿌렸더니 우연찮게 비가 내리고 거름이 생겨서 그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자라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고 나자 부탄은 이제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가 아니라 '꼭 가봐야 할 나라'가 되었다.

 

산삼을 캐내는 기쁨을 누리며 발견한 책은 캐나다의 여교사 제이미 제파가 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여행기라기보다는 체류기라는 말이 더 옳다. 왜냐하면 이 책에서 제이미는 부탄에서 3년 6개월을 머물면서 경험하고 느낀 점과 아울러 자신의 변화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제이미는 캐나다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은 사람이다. 문학을 전공한 사람의 글이라서 그런지 섬세하고 진솔하고 잘 쓴 여행기였다. 재미있게 읽혔으며 다 읽고 나서도 마음에 여운이 남았다.

 

다른 세계의 일원이 돼가는 과정의 진통과 환희 표현

 

여느 여행기와는 달랐다. 제이미의 여행기는 캐나다인의 삶에서 서서히 벗어나 부탄인이 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저런 삶도 있구나, 하고 체험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완전히 다른 세계의 일원이 돼가는 과정의 진통과 환희를 참으로 실감나게 표현한 책이었다.

 

제이미의 변화는 매미가 애벌레에서 성충으로 변하면서 땅속의 삶을 버리고 나무 위의 삶을 선택하는 것과 유사했고,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나오는 표현인 '새가 알을 깨고 나오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변화는 놀라웠고, 기존의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긴장감을 유발하며 동시에 글의 흥미를 유지하는 역할을 했다.

 

천주교인이고 문명국에서 살았고, 지구 반대편에 있던 제이미는 어느 날 신문에서 부탄에서 여교사를 구한다는 기사를 읽었다. 한번도 자기 나라 밖을 떠나본 적이 없고, 대학원 박사과정에 진학하고, 곧 결혼을 할 남자도 있고, 정해진 길로 갈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한 번쯤 다른 길을 걷고픈 마음에 사로잡혔다. 예약된 길로만 가는 자신의 삶이 답답하게 여겨져서 어떤 면에서는 충동적으로 부탄행을 결심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신고식은 혹독했다.

 

나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 내가 사는 2층으로 들어갔다. 음습한 다섯 개의 방 어디에도 들어가고 싶지 않았지만, 갈 수 있는 다른 곳도 없었다. 시멘트벽은 그을음과 기름때, 손바닥 자국으로 검게 변해 있었다. (중략) 내 방에는 수많은 야생 동물들이 살고 있었다. 조그만 생쥐와 큰 쥐, 펜치 같은 집게를 가진 검은 딱정벌레, 나방과 개미와 벼룩, 그리고 오늘 발견한 털이 북실북실한 거미까지 없는 게 없었다. 부탄에는 독거미도 있지 않을까? 거미들을 빗자루로 때려서 문 밖으로 쓸어냈다. 그러면 놈들은 계단에서 부활해 허둥지둥 달아났다. 집 안에 있는 수도꼭지를 모두 틀어보았지만 물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짐을 풀지 않았다. 방을 치울 때까진 짐을 풀 수 없었다. 모든 것이 축축하고, 먼지투성이고, 썩어 있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었다.

 

캐나다에서 부탄으로 와서 부탄에서도 가장 낙후된 곳에 있는 초등학교 2학년 교사로 발령 받은 그녀는 처음 한동안은 호된 적응기를 치른다. 무엇보다도 잠자리와 음식이 절박했다. 수도꼭지만 틀면 따뜻한 물이 좔좔 흐르고, 무슨 무슨 버튼만 누르면 금방 공기가 따뜻해지고, 마시는 물은 정수기의 필터를 거치면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고, 돈만 들고 나가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초코 케이크가 언제나 준비돼 있는 곳에 살다 온 제이미에게 부탄은 너무나 고통스런 곳이었다.

 

예전에 <집으로> 라는 영화에서 대도시에 살던 어린 소년이 산골 오두막에 살게 되면서 겪는 갈등을 그렸는데 제이미가 바로 그 소년의 처지였다. 그래서 그녀는 차라리 병이라도 들어서 캐나다로 돌아가고 싶어 했다. 부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전환기가 왔다. 싫기만 하던 부탄이 조금 좋아 보이기 시작하게 되는 계기가 생긴 것이다. 이웃 마을에 사는 교사를 방문하러 가다가 길을 잃고 산을 헤매고 있는데 어디선가 그녀 반 아이가 그 애의 숙부와 숙모와 함께 나타나서 길을 가르쳐주고 배가 고파 쓰러질 것 같은 그녀에게 먹을 걸 주었다. 그때까지 그녀는 부탄의 어떤 음식도 거부한 채 쿠키로만 연명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처음으로 부탄음 식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었다. 그리고 음식을 대접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이 참으로 푸근해지는 걸 느꼈다. 이때부터 부탄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그녀를 감동시킨 것은 아이들이었다.  아이들은 천사처럼 순수하고 착했다. 매일 아침 그녀에게 감자며 시금치며 야채를 가져다주고, 부탄 음식을 만들어주기도 했다. 먼저 부탄에 와서 살고 있는 동료 외국인 선생님으로부터 부탄의 다른 악조건을 모두 보상해주는 게 아이들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제이미는 어떤 상황에서도 순수하고 밝게 웃는 아이들을 보면서 그 말에 수긍하게 됐다.

 

하루는 제이미 반 아이가 옆 반 여자 아이를 끌고 왔다. 이유는 여자아이가 선생님의 잡지를 몰래 가져갔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이 애 눈을 보세요. 빨갛지요? 훔친 책으로 보면 이렇게 눈이 빨갛게 돼요."

 

이건 불교의 사상이었다. 불교에서는 업 사상이 있는데, 지은대로 받는다는 뜻이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처럼 죄를 지으면 벌을 받는다는 것이다. 불교가 지배적인 부탄인들은 이 업 사상을 굳게 믿기에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누가 지키지 않아도 도덕적인 삶을 살았다. 그래서 부탄에서는 범죄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제이미는 말했다.

 

처음 부탄이 싫었던 이유는 부탄의 물질이 많이 낙후돼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부탄이 좋아진 이유는 부탄의 정신문화가 차원이 높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정신적인 풍요로움이 하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그녀의 부탄에 대한 애정은 날이 갈수록 깊어졌다.

 

제이미는 점점 부탄을 좋아하게 되었고, 처음 부탄으로 올 때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돼 있었다. 물건을 소유하면서 만족감과 행복감을 키워가던 그녀는 몇 가지 안 되는 초라한 가구에서도 만족을 얻을 줄 알게 됐고, 불편한 문제 앞에서도 여유를 부릴 줄 알게 됐다. 정신적으로 많이 풍요로워졌다. 더 행복해진 것이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정신적으로는 늘 외롭고 긴장했던 그녀는 부탄에서 정신의 만족감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순수하고 인정 많고 종교적인 사람들 속에서 그녀는 만족했다. 그래서 그녀는 결국 부탄 남자와 결혼해서 부탄에서 살게 됐다.

 

이 책에 대해 <뉴욕타임스>는 '세상에는 그곳을 여행함으로써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여행자를 변화시키는 이상하고 놀라운 장소가 아직 남아있음을 알려 준다'라고 평했다. 제이미 제파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행'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인 것 같다. 나도 언젠가 이 놀라운 세계에 발을 들여놓기를 기대한다.

ⓒ 2011 OhmyNews
 
 
ⓒ 2010 OhmyNews